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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은퇴후 <1>] 흙으로 돌아가다 — 나의 두 번째 삶

오는 26년 3월 31일, 나는 44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1982년 처음 저널리스트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이후, 2012년 은퇴를 한 후에도 교육 컨설턴트로 12년을 더 달려왔다. 그 역할마저 이제 내려놓는다. 더 이상 어떤 직함도, 어떤 역할도 없이, 그냥 한 명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년 전, 작은 땅 하나를 샀다

신문사에 다닐 때였다. 언젠가는 농사를 지으리라는 막연한 꿈을 품고,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성덕리에 530여 평의 작은 농사터를 마련했다. 함께 땅을 산 큰 동서의 몫까지 합하면 1,000평이 넘는 터전이다.

당시에는 신문사를 그만두면 곧장 그 땅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이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 2012년 4월 기자 생활을 마친 뒤 은퇴후 교육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교육 컨설턴트로 활동을 했고, 그렇게 또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 주말마다 농장을 오가며 7~8년을 흙과 씨름했다.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바로 그 시절에 깨달았다. 흙을 만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누이와 사촌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농사

지금 그 땅에서는 교장으로 교직을 은퇴한 손위 누이가 어릴 적 시골에서 함께 뛰놀고 지금은 수도권에 사는 사촌들과 다시 뭉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한때 농막을 지었으나 너무 협소하고 볼품이 없어 결국 뜯어냈다. 지금은 방 두 개에 부엌이 딸린 농가 주택 별채를 통째로 얻어, 농사철이면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아늑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심는 것들도 제법 다양하다. 각종 채소는 물론이고 생강, 고추, 고구마, 토마토, 들깨, 참깨, 강낭콩까지. 두릅나무를 시작으로 포도, 사과, 자두, 매실, 보리수나무도 한 그루 한 그루 손수 심어 가꾸고 있다.

농약 없이, 화학비료 없이

교장 출신 누이의 고집이 하나 있다. 절대 농약을 쓰지 않는다는 것. 화학비료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 비료만으로 땅을 살린다. 힘들고 더디지만, 그렇게 유기농으로 짓는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수확한 고구마를 지금도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고 있고, 양파도 여전히 밥상에 오른다. 땅이 정직하게 돌려주는 것들이다.

이번 주 토요일, 감자를 심는다

3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사촌들과 금년에 수확할 하지감자를 심을 계획이다.

양평은 서울보다 아침 기온이 낮아, 열흘에서 보름 정도 늦게 모종을 내려야 냉해를 피할 수 있다. 도시 사람들이 모르는, 땅과 계절이 가르쳐 준 작은 지혜다. 야채는 5월 10일 넘어야 한다. 서울은 벌써 야채 모종을 팔고 있지만 양평은 땅들이 아직 잠을 자고 있다.

흙 속에 꿈을 묻는다

44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려왔다. 기사 취재, 마감, 보고서, 학부모 상담, 일정, 성과….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앞으로의 하루는 계절이 정해줄 것이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기다리고, 거두는 것. 그 단순한 리듬 속에서, 오래전 흙이 내게 가르쳐 준 그 행복을 다시 찾을 것이다.

흙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진짜 내 삶이 시작된다. <26.3.16/ 현담 이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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