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은퇴후 <2>] 감자,완두콩 심으며 흙 묻은 손으로 맞이하는 은퇴 첫 봄

겨울을 버텨낸 마늘처럼 — 봄 밭에서 새 출발을 준비하다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3월 21일 토요일, 농사의 좌장인 손위 교장 은퇴한 누이와 수도권에 흩어져 살던 사촌 형제들이 다시 밭으로 모였다. 지난 가을 수확후 금년 들어 첫 행사다. 이번에는 감자와 당근, 생강을 심을 준비를 하기 위해 밭을 고르고, 잡초 방지용 검은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했다.


겨울을 이겨낸 것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촌들이 양파 밭과 마늘 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얼지 말라고 씌워둔 비닐과 지지대를 거둬내고 있었다. 양파와 마늘이 연초록 빛으로 환영을 해 준다. 지난가을에 심어두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겨울을 넘겼는데, 녀석들은 눈보라와 혹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 있었다. 초록빛 싹들이 줄지어 올라온 모습을 보며 절로 뿌듯함이 밀려왔다.

대파도 겨우내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트랙터로 밭을 갈려면 아깝지만 다 뽑아내야 했다. 한 아름씩 뽑아 쌓아두다 보니 양이 상당했다. "이거 가락동 농수산시장에 가져가도 되겠는데?" 누군가 웃으며 말했고, 너나없이 웃음이 터졌다. 농부의 뿌듯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트랙터가 밭을 갈다

나의 농사를 도와주는 동네 주민이 주황빛 트랙터를 이용해 겨울 내 굳어있던 땅을 힘차게 갈아주었다.1000여평 농사를 지으려면 트랙터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뒤집힌 흙에서 올라오는 흙내음이 코끝을 간질였다. 기계 한 대가 사람 수십 명 몫을 해내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 옆에서 함께 걷고 살피는 손길들이 있어야 비로소 농사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비닐을 씌우고, 씨앗을 준비하다

트랙터가 두둑을 만들어 주면 그다음은 손이다. 검은 비닐을 두둑 위에 팽팽하게 씌우고 가장자리를 흙으로 눌러 고정했다. 잡초의 기세를 미리 꺾어두는 이 한 장의 비닐이 여름 내내 얼마나 큰 수고를 덜어주는지, 이제는 안다. 그러나 70대 시니어들이 이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한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일을 한다.

완두콩 씨앗을 준비했다. 분홍빛으로 코팅된 씨앗들이 초록 대야 안에 소복이 담겨 있었다. 약제 처리가 된 씨앗 특유의 선명한 색깔이 괜스레 설레게 했다. 이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몇 달 뒤에는 밥상 위로 올라올 것이다. 아직도 나의 냉장고 냉동실에는 지난해 거둬들인 완두콩들이 있다. 밥을 할 때마다 한줌씩 넣으면 상큼하다.


나무들도 봄맞이 준비를

밭일만 한 게 아니었다. 밭주변에 적지 않은 유실수가 있다.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앵두나무와 보리수나무가 너무 웃자라 있어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사과나무와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봄이 오기 전에 불필요한 가지를 쳐줘야 열매가 실하게 맺힌다. 나무도 사람도 때를 맞춰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벌써 해 주었어야 하는데 지금이 막바지다.


농사도 정성이다

3월 31일 이제 은퇴까지 딱 일주일이 남았다.

수십 년을 직장에 바쳤던 시간들이 정리되는 것과 동시에, 밭에서의 시간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이 단순한 반복이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농사도 정성이다. 마음을 쏟아야 식물도 그만큼 보답한다. 올봄, 감자와 당근과 생강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밭을 함께 일구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흙 묻은 손을 씻는다. <26년 3월 22일 현담 이강렬>

#은퇴후농사 #귀농준비 #텃밭일기 #감자심기 #봄농사 #주말농장 #시골생활 #제2의인생 #흙과함께 #농부의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