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미술 체육 전공자 유학/음악 치료 전공 하기

나는 희망을 심었다.

3년 뒤 손주들 따 먹을 것을 기대하며

'사랑을 심으려면 대추 나무'를 심어라

대봉감, 호두, 두릅 나무도 심어

세상이 내 맘대로 될리는 없지만 일들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일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사람들이 상처를 준다. 가만히 있는 나무를 흔들어댄다. 그렇다고 내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 아내나 친구, 책이 주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위로는 진통제처럼 잠깐은 아픔에서 벗어나지만 후벼판 마음의 생채기에서 뇌수로 퍼져나가는 극심한 고통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런 때 자연으로부터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인생 6학년 9반 학생의 경험으로 ...

 

어느날 양평 주말 농장에 과일 나무들을 심어야겠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봄 기운이 가득한 양평 농장에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심자자고 나섰다. 3월 12일 토요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 나무-꽃 시장을 찾았다. 지난 2004년 양평에 500여평의 농지를 구입후 '전문 농사꾼'으로 농업 경영채 등록을 하고 17년 동안 각종 작물을 심었다. 옆에 함께 땅을 구입한 동서의 땅 500여평까지 1천평의 비교적 넓은 땅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심는 작물만 이십 여가지가 넘는다. 감자,고구마, 들깨, 참깨, 상추 등 푸성귀, 완두 콩 등 콩 종류, 대파, 쪽파 등등...이제부터 작물 농사와 함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주말에만 힘을 쓰는 주말 농사꾼이지만 이제 그 알량한 농사가 힘에 부친다.

지금은 공직을 은퇴하고 손주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누님이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곁다리 농사꾼이 되었다. 아니 이제는 농사 구경꾼이 됐다. 누님은 지난 겨울 마늘 30여접(1접은 100개)을 심었고, 겨울 동안 냉해를 막기 위해 씌워 놓은 비닐막 속에서 추위를 견딘 마늘이 파란 싹을 힘차게 땅위로 밀어올리고 있다. 지난 해 심어 놓은 대파, 쪽파도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겨울을 났다. 고랑마다 자연산 냉이가 지천이다. 내게는 위로의 땅이 되고 있다.

양재 화훼 시장은 봄의 따뜻한 기운 가득했다. 꽃시장은 꽃시장대로, 나무 시장은 또 나무 시장대로..

가장 먼저 사과 나무를 샀다. 내 생에 처음 심어보는 사과나무다. 사과 나무가 주는 '희망'이라는 상징성이 내게 나무 시장에 도착하자 마자 사과나무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어줍짢게 줒어들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한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 때문이다. 부사(富士) 품종을 골랐다. 부사는 달콤한 맛에 아삭한 식감이 좋다. 다섯그루를 골랐다. 아내는 사과를 가장 좋아한다. 1년 내내 냉장고 과일 박스에 떨어지지 않는 과일이 사과다. 오늘 심은 사과나무는 3년 뒤에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적어도 3년은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르웨이에 사는 손녀가 와서 딸지, 누님의 손주들이 딸지 모르지만 사과나무는 행복 그 자체다.

대추 나무도 세 그루를 골랐다. '대추 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TV 전원드라마가 생각났다. 양평 농장 입구에 큰 대추 나무가 있었는데 몇 년전 이유를 모른채 말라 죽어버렸다.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는 데 대추 나무를 다시 심었다. 어릴적 배고픈 시절 시골에서 가을날 푸릇한 색깔에 갈색이 드뭇드뭇 박혀있는 대추들을 따서 베어물면 입안 가득 대추향과 함께 은은한 단맛이 감돌았다. 지금도 가을이 되면 시장에서 봉지에 담긴 풋대추를 사서 추억을 음미한다. 나무 마다 가득 풍성하게 맺을 대추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심으려면 대추를 심어라'고 말하고 싶다.

<양평 농장 모습>

호두 나무도 세그루를 샀다. 어릴 적 고향 마당가에 큰 호두나무가 있었다.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들이 가득가득 열렸다. 늦가을 익은 호두를 따서 돌로 살짝 내리치면 파란 껍질이 벗겨지고 황금색 호두 알이 드러난다. 이것을 다시 돌로 잘근잘근 조심스럽게 때리면 사람의 뇌를 닯은 신비한 속살이 드러난다. 호두는 배고팠던 시절 고소한 맛의 사치스런 간식거리였다. 그러나 호두 나무 수형은 볼품이 없다. 벌레가 가득 꼬인다. 열심히 농약을 쳐야 그나마 몇개를 건질 것이다. 호두는 그저 열매만 보고 심는 나무다. 3그루를 사서 밭가 둘레에 심었다.

대봉 감나무도 세 그루를 샀다. 추운 양평 지역에서 자랄 수 있는 감나무는 대봉밖에 없다고 나무 시장 상인들이 말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나는 대봉감을 박스로 주문해 냉장고에 넣고, 겨울 내내 간식으로 즐긴다. 어릴적 시골에는 반시가 많았다. 시골에서는 높은 감나무에 홍시를 따러 올라갔다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반시는 일찍 익어서 대부분 홍시로 먹는다. 그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그만이다. 껍질을 깍아서 곶감으로도 만든다. 그런데 나는 대봉을 선택했다.

그외 두릅 나무 5 그루, 체리 4그루, 포도나무 3그루 , 구기자 4그루, 앵두 1그루 , 목련 3그루를 샀다. 그런데 아쉽게 못산게 하나 있다. 후박나무다. 늘 푸른 나무로 넓은 잎에 키가 크다. 후박나무는 내가 시골에 집을 짓는 다면 서재 창가에 심고 싶은 나무다. 바람부는 날 잎새가 붙딪히며 내는 소리가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나무다. 시간이 허락하면 다음 주 다시 나무 시장에 가서 구해다 심을 생각이다. 내주에 다시 양재동 나무 시장에 가서 희망과 사랑의 나무들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2023.3.13>

<양평 농장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