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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는 시간을 찍는 'Deep Time'의 사진 작가다.

나는 Deep Time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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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경을 찍는 사진가가 아니다.

내가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은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생애를 훨씬 넘어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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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년, 수억 년, 때로는 수십억 년에 걸쳐 지구가 만들어온 흔적을 찾아 카메라를 든다.

나는 이 작업을 ‘Deep Time — 억겁(億劫)’이라고 부른다.

Deep Time은 지질학에서 인간의 감각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지구의 긴 시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70년, 80년, 100년이라는 시간은 그 앞에서 거의 한 점에 가깝다.

나는 그 거대한 시간이 자연에 남긴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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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의 결,

깊게 패인 균열,

겹겹이 쌓인 층,

물과 바람이 깎아낸 표면,

얼음과 압력이 밀어붙인 흔적.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바위’라고 지나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그 안에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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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도 나는 결국 바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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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르웨이와 스웨덴 여행에서도 나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여행자라면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물, 거리와 사람들을 먼저 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풍경들을 즐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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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암벽,

해안의 바위,

공원의 돌,

비와 바람에 닳은 표면.

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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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오래된 바위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표면에서 선과 색, 균열과 층을 본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그것은 더 이상 바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폭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지도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떤 것은 우주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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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유럽 여행에서도 그런 장면들을 여러 번 만났다.

특히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암석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오랜 지질학적 시간과 빙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지질학적 표본으로서의 바위만은 아니다.

내가 찾는 것은 그 안에서 보이는 ‘시간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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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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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을 보면 어떤 사람은 묻는다.

“이게 무엇을 찍은 사진인가요?”

나는 그 질문이 싫지 않다.

오히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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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대상이 즉시 ‘바위’로 읽히지 않고, 보는 사람이 잠시 멈추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면 내가 의도한 방향에 가까이 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위를 사실적으로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낸 형태와 색을 통해 인간이 만든 추상회화와는 전혀 다른 ‘자연의 추상’을 보여주고 싶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이미 지구가 완성해놓은 작품을 찾아내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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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아주 느린 화가다.

물감 대신 압력과 열을 사용하고,

붓 대신 물과 바람과 얼음을 사용한다.

그리고 수백만 년, 수억 년에 걸쳐 한 장의 화면을 완성한다.

나는 그 앞에서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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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시간을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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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찰나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1/125초, 1/250초와 같은 아주 짧은 순간을 기록한다.

그런데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역설이다.

찰나를 기록하는 카메라로 억겁의 시간을 찍는다.

셔터가 열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의 1초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바위는 수억 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

내가 Deep Time이라는 작업에 계속 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 한 장 속에 너무나 짧은 시간과 너무나 긴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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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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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기자는 늘 ‘오늘’을 기록한다.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무엇을 말했는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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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진을 하면서 나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오늘이 아니라 수백 년을 생각하게 되었고,

수백 년을 넘어 수백만 년, 수억 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도착한 것이 Deep Ti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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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 것인지 모른다.

우리 인간에게는 10년이 길고, 70년이 길고, 100년은 거의 한 생애 전체다.

하지만 바위 앞에 서면 그 시간의 척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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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시간도,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아주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그런 생각이 이상하게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간의 걱정과 욕심이 조금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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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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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휴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업의 연장선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도시를 걷고, 미술관을 방문하고, 아내와 여행을 즐기면서도 나의 눈은 끊임없이 새로운 Deep Time의 흔적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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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재를 발견하면 멈춘다.

카메라를 꺼내고 프레임을 바꾸며 여러 번 바라본다.

때로는 그 자리에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사진이 돌아와 화면으로 크게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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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행을 마친 뒤에는 또 하나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사진 가운데 어떤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고, 어떤 사진이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골라내는 일이다.

아마 이 과정이 앞으로 상당히 오래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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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Deep Time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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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이 작업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 곳곳에는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수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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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바위에도,

스웨덴의 해안에도,

한국의 산과 계곡에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돌 하나에도 시간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그 시간을 찾아 계속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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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그것을 기록하고 싶다.

나는 Deep Time의 작가다.

지금도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여행하며

‘억겁(億劫)’의 흔적을 찾아 걷고 있다. <현담 이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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